“잘 살고 있어요?”

“잘 살고 있어요?”

타향살이 회원들의 분투기

아래로부터 편집팀

『아래로부터』 편집팀은 제 34호에 타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의
소식을 싣기로 하고, 서면과 유선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고차원 회원과 박두영 회원은 각각 언론노조 MBC본부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중앙임원으로 피선되어 서울과 울산에서 활동중이고, 강경표 회원은 해직 6년만에 원직복직하여 현재 서울 미성중학교에서 재직중입니다. 최하영 동지는 수원에서 제빵사로 근무하면서 화섬노조 파리바게트지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성의있게 작성해주신 네 분 동지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사람과 음식이 낯선 타향에서 열심히 활동중이신 회원들을 응원하며, 역할 잘 마치고 건강하게 귀향하기를 바랍니다. 최대한 원문을 그대로 살려 ‘재구성’했습니다

노동연대(이하 노) : 반갑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전북 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을 소개하고 타향살이가 어떤지도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먼저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주세요.

언론노조 MBC전주지부 활동을 일단락하고 MBC본부 부위원장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고차원 회원

고차원(고): 안녕하세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수석부위원장을 맡고있습니다. 서울에 있습니다.

박두영(박): 저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부지부장으로 주로 울산에서 일하고 있는 박두영입니다.

강경표(강): 반갑습니다. 서울 미성중학교 교사노동자로 일하는 강경표입니다.

최하영(최): 화학섬유식품노조 수도권본부 파리바게트지회 선전부장으로 수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하영입니다.

노: 다들 각각 다른 현장에서 일하시고 계신데요. 그 이전에는 어디서 활동을 하셨나요?

전북에서 열심히 투쟁하던 시절(?) 강경표 회원.
세월이 흘러가지만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강: 20대 때 교사노동자로 취직했구요. 30대 후반부터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전임으로 일하다가 40대 초반에 해직됐다가 후반인 지금은 명예회복하고 다시 서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박: 현대차지부 전주공장위원회 대의원, 민주노총전북본부 부본부장, 전주위원회 현장조직 의장을 했었습니다.

고: 저는 1997년에 전주MBC에서 입사해서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을 했었습니다. 17년부터 18년까지는 MBC본부 전주지부위원장을 했습니다.

최: 저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인권/대안/실천/연대를 위한 학생모임 동행 회원으로 활동을 했었어요.

노: 박두영 동지빼고 전부 수도권이신데요. 어쩌다가 그 먼 곳(?)으로 가시게 되셨는지, 타향생활은 만족하시는지 회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파리바게트지회 선전부장으로 수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하영 회원. 전임시간이 없지만 활동에 열성을 다하고 있다

최: 2016년 직장을 수원으로 옮기면서 전주에서 이사를 갔고, 2017년에 파리바게뜨지회가 생겨서 노동조합 상집간부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족하냐는 답변에는 대답하기 어려워요. 노조 간부도 처음이고, 게다가 신생노조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열심히 배워나가고 있어요. 장단점이 다 있는데 특히 학생운동과 내 현장에서의 투쟁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고: 저는 전주지부장 임기를 마칠때쯤 다른 지부장들이 차기 선거에서 수석부위원장 출마를 권유했는데 이를 수락한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지역지부장 활동이 현장 중심이라면 수석부위원장은 정책 분야 활동을 등한시할 수 없더라고요. 미디어 정책, 그 중에서도 지역방송 정책 개선을 위해 헌신해야해요. 10년 전 언론노조 전임자로 활동할 때 정책 분야 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 낯설지는 않은데요. 다만, 책임감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민주노총전북본부 교육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박두영 회원. 지금도 전주로 돌아가면 건강을 챙기며 못다한 독서를 할 생각이라고 한다

박: 현대자동차 지부 7대 집행부 선거를 통해 지부 임원이로 당선되어 활동하게 됐고요.
큰 규모에 따르는 광범위한 소관 범위와 이에 따른 다양한 문제, 접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업무로 인해 만족감을 느낄 새 없이 늘 배우면서 정신없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강: 2008년 첫 민선 서울교육감 선거가 있었는데요. 이 선거는 교육 공론의 장 일 수밖에 없었어요. 이명박 정부 시기 더욱더 미쳐가는 미친 교육에 대해서 교사는 말할 권리와 말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교육감 선거에 ‘미친 교육 아웃’을 외쳤던 전교조 서울지부 집행위원을 ‘정치적 중립성’ 위반으로 옭아매서 6명을 해직시켰어요.

해직은 아픔도 있었지만, 정치적·주거의 자유도 주었습니다. 서울 탈출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차, 해직으로 주어진 주거의 자유에 전교조 전북지부가 흔쾌히 응해주어 전북 운동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요. 6년만인 2019년 3월 4일 복직해서 서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의 출근은 얼마나 떨렸는지 모릅니다. 3월 한 달, 6년의 공백을 채워 내느라 진땀 깨나 흘렸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긴장하며 출근하고 있어요

노: 답변 감사합니다. 다들 바쁘게 지내시고 계신데요. 자유시간이 더욱 특별할 것 같습니다. 자유시간에는 보통 무엇을 하시는지, 어떤 것이 가장 애로사항인지 말씀해주세요.

박: 특별히 자유시간이 없네요. 일과이후에도 업무의 연속이라.. 단지 주말에 특별한 업무가 없으면 전주에 가서 지역 동지들 만나는 게 낙입니다.
힘든 점은 아무래도 타향이니 처음엔 사람 문제하고 잠자리가 편하지 않은점이 힘들었어요. 음식도 가끔 맞지 않습니다. 업무도 생소하고 또 다양해서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2년차가 되어가니 많이 적응 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발생하는 문제들에 늘 새롭다는 생각으로 배우는 자세로 일하고 있습니다.

고: 자유시간이 별로 없어요. 어쩌다 여유가 되면 술을 마시며 토론을 합니다. 애로사항은 생활과 활동의 근거지가 바뀌다보니 보고 싶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 못한다는 게 제일 아쉽습니다.

강: 주변의 많은 동지 분들이 복직 축하만큼이나 신이 내려준 주말 부부라며 대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부푼 기대와 설렘으로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만,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이 생각보다 상당히 어색하고 외롭더라고요. 퇴근 후 집에서 혼자 밥 먹는데 외롭더라고요. 아직까진 가족의 품이 그립습니다.

최: 주로 취미생활을 해요. 기아타이거즈 팬이거든요. 야구보는게 낙이고요. 휴무날엔 전주에 내려가서 조카들이랑 놀아주고, 가끔 친구들도 만나요.
애로사항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타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니 지회활동으로 힘들거나 조합원들과 마음이 맞지 않았을 경우 조언을 구하거나 고민을 나눌 때 친한 동지들이 (전북)지역에 있기 때문에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없는 아쉬워요. 특히 감정적인 부분에서 컨트롤이 되지 않거나 문제에 부딪혔을 때 동지들이 없다는 게 너무 아쉽고 생각나는 부분입니다.

노: 자유시간이 많지 않다는 답변이 대다수네요. 몸 건강히 생활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번엔 좀 진지한 질문입니다.
아무래도 타지역에서 활동하시면 전북지역 운동과의 해당 지역의 차이나 장단점이 보이실텐데요. 이에 관해서 한말씀 부탁드려요. 또 지역운동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도 부탁드려요.

고: 예나 지금이나 서울 쪽의 운동은 현실 정치와 굉장히 밀접하게 돌아갑니다. 각 정당, 청와대, 정책 주관 부서가 몰려 있고 운동 단체의 본부가 자리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한 정책 전문가들이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사안 분석과 해결을 위한 정책적 토론도 매우 활발합니다.
지역운동에 대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마땅치 않은데요. 제가 뭐 운동을 했다고 볼 수도 없고요. 기자로 일할 때나 지부장을 할 때나 그저 맡은 위치에서 역할을 방어해온 것에 불과합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들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박: 운동의 메카라고 불리던 울산도 많이 변했습니다. 일단은 금속노조 내 기업지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금속노조와 기업 지부간 융화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업체가 많지만, 석유화학은 한국노총, 금속은 민주노총으로 반분되어있고, 사업장도 대부분 자동차와 조선에 몰려있는 현실입니다. 대공장 중심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보입니다. 전북과 비교한다면 울산보다는 전북 운동이 더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면이 있습니다. 지역본부주관 집회를 보면 전북과 차이가 많습니다. 동원되는 인원을 봐도 조합원 대비로 보면 전북이 그래도 잘하고 있다는 생각 입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울산이 정당별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으나 현장에서 많은 호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어요.
지역운동 역할이 다양한 지역 의제와 전국적인 의제를 결합한 투쟁조직과 함께 노동자시민들에 대한 정치(탈 사업장) 의식을 고양해야 하는데, 아직 전북지역 운동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북지역 운동에 대해서는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주관하여 전체 조합원 모금 운동을 통한 투쟁기금을 확보하여 비정규직 투쟁과 미조직 조직화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업지부에서만 근무를 해서 전체적인 판단과 벌어지는 사안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한 부분과 대기업 노조의 집행권력에만 매몰되는 오류를 개선하도록 공장을 넘는 광범위한 활동과 의식을 향상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강: 서울에서 전교조 활동 10여년, 전북에서 활동 한 지 5년입니다. 서울에서는 전교조 동지들과만 소통했다면, 전북에서는 여러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소통 했습니다. 제 운동이 확장됨을 실감했습니다. (어쭙지않게^^)향후 전북지역 운동은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층을 확장시키는데 조직적 고민과 실천이 이행될 때, 전북지역 운동의 상상력을 높여가면서 질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북지역운동에서 아래로부터 노동연대가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최: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제가 지역에서 아직 이렇다 할 운동을 한게 아니어서 평가를 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노: 진부하고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는데, 진지한 답변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회원들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당부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고: 수석부위원장 임기가 2년이니, 2021년 상반기에는 일상에서 여러분들을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노동의 봄은 오직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치지 말고 잘 버텨내는 것도 투쟁입니다. 건강을 잘 챙겨야 투쟁도 잘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지들과 이 말을 공유하고 싶습니다.“여러 선택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방법이 정답일 것이다” “말과 행동 가운데 진심은 행동에 담겨 있다.”

박: 지난 2년여동안 자신을 돌볼 겨를 없이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단체교섭이 끝나야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못다 한 독서와 무엇보다도 건강을 좀 챙기려 합니다. 혈압이 너무 높아져서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동지들의 관심과 염려 덕분에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많은 경험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운동을 동지들과 공유하여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조합 활동을 넘어 노동운동으로 진전시킬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부를 말할 수가 없고 전부를 표현할수 없지만 늘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 동지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하루의 실천이 미래의 노동해방과 인간 해방의 초석이라는 심정으로 현실을 이겨내는 투쟁의 원동력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끝으로, 투쟁도 건강해야 잘 할수 있습니다. 건강은 스스로 챙겨 가면서 했으면 합니다. 투쟁!!

최: 직장 때문에 수원에 살게 되어서 직장을 다시 전주로 옮기지 않는 이상, 빠른 시일내 전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음의 고향인 전북 지역운동을 열심히 응원하려고합니다 푹푹 찌는 계절이 지나가고 있는데요. 건강이 우선이 되야 건강한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건강 챙기시길 바랄고요. 또 행복하지 않는 활동가는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동지여러분들 모두 선 자리에서 행복하게 투쟁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승리합니다. 이 푹푹 찌는 계절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듯 동지여러분의 투쟁에도 좋은 날이 오길 기도하겠습니다. 화이팅!

강: (서울에서 전북으로 전출 희망원 제출 예정) 2020년 전북 교사 노동자로 만나고 싶습니다. 전북에서 제 운동의 폭을 확장시켜 준 조직이 바로 노동연대 동지들이었습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투쟁하는 동지들을 보며, 나태해져 가는 저를 다잡아 줌에 감사드립니다.

* 편집팀) 강경표 동지는 인터뷰를 마치며 회원여러분께 드리는 당부의 말을 일기로 대신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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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복직 결정이 되고, 일기를 썼더랬습니다. 복직 당시의 마음을 고스란히 동지들께 공개합니다.)
복직 결정 통보를 받고 나니
2017. 11. 29일 공무담임권과 선거권, 피선거권이 부활된 날이 생각납니다.
마음이 한 결 편해지고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을 느꼈었습니다.
5년간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음을 5년이 되는 날 느꼈었습니다.
교육의 중심 주체인 교사가 교육감 선거에 미친 교육 아웃을 외친 것이 죄가 되어, 학교를 쫓겨나는 것이 무척이나 억울했습니다. 전교조가 우리의(해직 6명) 억울함을 인정해주고 교사의 정치적 자유 쟁취 투쟁으로 품어주었기에, 밝은 얼굴로 오늘까지 왔습니다.
전교조 해직 생활 6년, 어쩜 이렇게도 일이 많답니까. 좀 여유가 생겼다 싶으면 여지없이 또 다른 일정과 사건 사고가 들이닥쳐 허우적대기 일쑤였습니다. 바쁨이 일상이었던 해직기간 동안 전교조의 깊은 내면과 넓은 연대를 경험하면서 나 자신도 성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지칠 수밖에 없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딱 쉼이 필요한 시기, 상처입지 않고 성장만 하고 복직하게 되어 더없이 기쁩니다.
복직의 길목에서, 함께 해직되었으나 복직하지 못 한 두 동지(송원재, 김민석)와 법외 노조가 여전히 취소되지 않아 해직의 길에 서있는 33분(김재균, 노병섭, 윤성호) 그리고 사학민주화 투쟁으로 해직된 양민주 동지와 같이 복직하지 못해 여전히 마음이 무겁습니다. 먼저 현장으로 복귀합니다. 곧 현장에서 뵐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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