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밴, 바나나공화국, ‘국경의 민주화’

캐러밴, 바나나공화국, ‘국경의 민주화’

하성안(이윤보다인간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공개한 국경장벽 디자인

셧다운

지난 12월 22일,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가 시작되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각종 행정기관이 예산이 막혀 업무정지 상태가 된 것이다. 비록 일시적이라곤 하지만, 직원에게 급여를 지불할 수도 없고 최소한의 운영비용도 사용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수많은 행정기관들이 문을 닫아 걸 수밖에.

이번 셧다운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강행하고자 하는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 57억 달러에 대한 민주당의 완강한 반대로, 시한 내의 연방정부 예산안 처리가 무산되어 벌어진 일이다.

처음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했던 멕시코 국경장벽은, (그 건설비용을 멕시코에게 전가하려 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멕시코로부터의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트럼프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는 당연히 그 비용을 제공하길 거부했고, 장벽 건설에 국민의 세금을 쓸 수 없다는 비판을 의식한 트럼프로서는 장벽 건설을 섣불리 강행하긴 어려웠다. 그러다 올 10월, 온두라스에서 출발한 ‘캐러밴’ 행렬이 처음의 수백 명 수준에서 1만 여명까지 불어나 과테말라, 멕시코를 거쳐 미국 남부 국경을 향해 행진해 오자, ‘국가비상사태’, ‘침략자’ 운운하며 장벽 건설을 서두르는 빌미로 삼은 것이다. 민주당의 반대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개의치 않고.

본래 캐러밴은 사막과 초원에서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상인을 뜻하는 용어지만, 최근에는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즉, 과테말라나 온두라스, 엘셀바도르 등 중남미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무리를 지어 도보나 차량으로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진입하려는 행렬을 뜻한다.

시대착오적이고 무시무시한(!) 디자인의 장벽 건설에 집착하는 트럼프의 광기가 캐러밴을 핑계로 또 다른 혼란을 낳고 있는 것이다.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와 접경을 이루는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미국 쪽으로 국경 진입을 시도하던 온두라스 출신 이주민 모녀가 국경수비대가 발사한 최루탄을 피해 뛰어가는 장면

모녀와 최루탄

현재 미국과 멕시코를 잇는 중요한 국경관문인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와 멕시코의 티후아나 사이의 국경은 잠정폐쇄되어 있다. 지난 11월 25일, 수백 명의 캐러밴 이민자들이 “우리는 범죄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국제 노동자들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미 국경을 향해 시위를 벌였고, 이중 일부가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하자 미 국경수비요원들이 최루탄을 사용해 막는 일이 있은 이후부터다. 12월 13일에는 미국 국경을 넘은 7살짜리 과테말라 출신 캐러밴 소녀가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에 체포된 뒤 구금 중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캐러밴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였던, 멕시코-미국 국경도시 티후아나에는 수천의 이주민이 임시 수용시설의 열악한 환경과, 멕시코 시민들의 노골적 냉대 속에 힘든 ‘이주 대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미국으로 들어가 망명신청을 하고 난민심사를 받는 것이다. 미국의 현행법은 일단 누구나 망명 신청을 할 수 있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한편, 미국 국경을 불법으로 넘는 사람들의 망명 신청을 크게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은 트럼프 대통령 포고령이 지난 11월 9일에 발표되었다. 포고령에 따르면 멕시코 쪽에서 미국 망명을 신청하려는 사람들은 남부 국경에 위치한 26개 장소에 가서 망명을 신청해야 한다. 기존에는 수많은 사람이 일단 아무 곳에서나 국경을 넘은 뒤에 망명을 신청하곤 했다. 하지만, 새 규정 아래서는 국경을 넘다 잡힌 사람들의 망명 신청이 거부되고 이들은 추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경은 폐쇄되었고 트럼프는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겠다고 으름장이며, 목숨을 걸고 몰래 국경을 넘지 않으면 미국 땅을 밟기조차 어렵다. 임시 수용소에는 식량부족, 열악한 위생 등으로 환자가 속출하고 있고, 기다림에 지친 일부는 다시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절망의 귀향’을 택하고 있다.

남은 이들 앞에는 티후아나 수용소에서의 암담한 기다림과 목숨을 걸고 미국 국경을 넘는 것 사이의 양자택일만이 있을 뿐이다. 둘 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은 같다.

도대체 이 목숨을 건 이주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왜 이들은 자신의 나라와 고향을 버리고 미국을 향해 죽음을 무릎 쓴 수천 Km의 행진을 해 온 것일까?

‘고난의 길(Via crucis)’

본래는 카톨릭 종교용어로, ‘십자가의 길’ ‘수난의 길’을 뜻한다. 캐러밴 당사자들과 중남미국가에서는 캐러밴을 이렇게 부른다.

지난 10월 12일, 온두라스 제 2의 도시 산페드로 술라에서 약 160명이 버스 정류장에 모였다. 이들은 폭력과 가난을 피해 온두라스를 떠나 약 한 달간 여정으로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이었다. 이전까지는 캐러밴 행렬은 보통 수백 명에 불과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10월 13일 캐러밴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이미 1천 명 이상이 참여했으며, 온두라스에서 출발한 캐러밴이 과테말라를 지나 멕시코 국경에 다다랐을 땐 이 숫자가 수천 명이 넘었다. 이웃 국가들에서 쫓아온 캐러밴까지 합류해 그 규모가 한때는 1만 명에 이르기도 했다.

출발지인 산페드로 술라에서 목적지인 티후아나까지의 거리는 총 4300Km에 이르고, 중남미의 뜨거운 기후아래 그들은 매일 대략 32Km씩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한 달이 걸려 온갖 난관을 뚫고 미국 남부국경에 수천의 캐러밴이 도착한 것이다.
중미국가로부터의 캐러밴은 2018년 들어 급증하기 시작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온두라스의 캐러밴은 2009년 군부 쿠데타 이후 발생한 극심한 빈곤과 범죄가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온두라스에서 하루 2150원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층의 비율은 2009년 58.8%에서 2012년 66.5%까지 늘어났으며, 미주개발은행(IDB) 발표에 따르면 이 일대에서 발생하는 강도 사건이 인구 10만 명 당 321.7건으로, 세계 평균의 3배를 웃돈다고 한다. 최근 20년 간 살인 사건은 250만 건에 이른다. 세계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이지만 세계 전체 살인 사건의 39%가 이 일대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캐러밴의 규모가 급증하는 근본 원인은 이들의 출신지인 온두라스·과테말라·엘살바도르, 즉 ‘북부 삼각지대’의 심각한 치안 불안 때문이다. 북부 삼각지대는 마라 살바투르차(MS)-13과 바리오-18이라는 양대 범죄조직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두 집단 모두 미국 내 불법체류자 공동체에서 비롯됐지만, 중미로 추방된 사람들이 고국에서조차 범죄조직을 형성하면서 국가 치안을 뒤흔드는 지경이다. 중미 북부의 살인범죄율이 유독 높은 이유도 이들 조직 때문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밀입국업자들인 ‘코요테’는 그동안 돈을 받고도 이주민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희생되었다.

범죄조직의 살인적 폭력과 극심한 가난을 피해 길을 떠난 이들은 그 시작부터 다시 한 번 목숨을 걸어야 했다. 산과 강과 계곡을 통과하는 이민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이다. 이들은 강도·강간·살인·인신매매 등에 종종 희생됐고 어떻게든 이를 막을 방편으로 무리를 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미국으로의 이주행렬이 수백, 수천의 무리를 지어 이동하게 된 이유이며, 이들을 사막의 대상에 빗대 ‘캐러밴’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존의 기회를 찾아 미국을 향해 가는 캐러밴의 여정은 출발부터 도착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었다.

바나나공화국

바나나 등의 한정된 일차생산품의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지해 주로 미국 등의 외국 자본에 제어받으며 부패한 독재자와 그 수하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작은 나라를 가리키는 경멸어이다. 냉전시절 미국의 안마당처럼 휘둘리던 엘살바도르, 벨리즈, 온두라스, 과테말라 등의 중미의 나라들을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출발한 나라 온두라스는 과연 어떤 나라이기에 그렇게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야 했던 것일까?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에 둘러싸인 인구 900만의 작은 나라 온두라스는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이래로 오랫동안 정정불안에 시달렸다. 내란과 쿠데타가 이어지는 오랜 혼란 속에, 지배집단은 근대화를 명목으로 바나나농장과 광산을 외국자본에 개방해버렸다. 막대한 이권이 외국계 바나나회사로 흘러들어갔고, 심지어 철도부설권까지 획득한 국제 바나나회사들은 타 산업에 대한 통제까지 좌지우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온두라스를 포함한 중남미는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놓여있는 국가들이였다. 미국이 지원하는 독재자가 미국계 과일자본과 광산자본 등의 이권을 충실히 보장해 주는 동안, 각 국가의 내적 발전동력은 고갈되었고 인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군사독재의 폭력과 부패, 범죄와 빈곤 속에 인민의 불만은 누적되어 갔고, 반독재-반제국주의 투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결국, 1980년대에 이르러 중남미 전역에서 인민들의 투쟁이 분출했고, 온두라스의 이웃나라인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니스타 혁명이 성공하여 반미-좌파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쿠바에서 시작된 혁명의 도미노가 중남미를 휩쓸 것을 우려한 레이건정부는 니카라과 우익반군(콘트라)를 적극 지원했으며, 온두라스 정부와 국민의 의사는 무시하고 온두라스 영토 안에 콘트라반군의 기지를 건설했다. 이웃나라의 내전과 자국 내에 존재하는 반군기지는 온두라스의 치안을 혼란스럽게 했으며, 군자금 마련을 위해 마약거래를 마다치 않았던 콘트라반군의 활동은 주변 지역에 범죄와 혼란의 싹을 흩뿌렸다.

80년대 이후 온두라스의 정치체제는 우파 국민당과 중도우파 자유당의 양당체제가 지속되었다. 그러던 중, 2005년 대선에서 당선된 자유당의 셀라야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과 무상교육 추진 등의 개혁정책을 펴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정권에 접근하는 등의 좌파적 성향을 보이자 2009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셀라야가 축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온두라스의 정치의 불안정과 치안문제는 절정에 달했고, 이 시기부터 온두라스 국민들의 미국으로의 캐러밴 행렬이 시작되고, 해가 바뀔수록 점증하게 되었다.

온두라스의 경제는 바나나, 커피, 마호가니(목재) 수출과 더불어, 캐러밴을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 이주한 해외 거주자들의 송금 수입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미국 정부가 중미 북부삼각지대로부터의 캐러밴을 통한 집단이주를 막기 위해 상당한 액수의 원조를 각국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원조 또한 수입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지만, 정치의 불안정과 부패로 원조금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사용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미국의 원조와는 상관없이 캐러밴을 통한 이주는 꾸준히 이어졌다.

2016년에만 미국 정부는 과테말라에 1억3100만 달러, 온두라스에 9800만 달러, 엘살바도르에 6800만 달러 규모의 원조를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정부가 해외 원조를 줄이면서 내년에 과테말라 원조액은 6900만 달러, 온두라스 원조액은 6600만 달러, 엘살바도르 원조액은 4600만 달러로 총 4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트럼프는 올해 들어 이들 나라의 정부가 미국으로 향하는 캐러밴을 막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며, 이마저도 전부 삭감해 모든 원조를 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 내 트럼프 비판자들은 이들 국가에 대한 원조를 끊을 경우, 오히려 해당국의 경제난이 심화되어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이민자들이 폭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고질적인 정치혼란이 낳은 치안불안은 범죄조직이 나라를 양분해 지배하다시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경제는 그 기반이 왜곡되고 심각하게 미국 의존적이라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국민의 대다수는 폭력과 가난 속에서 인간 이하의 삶에 허덕이는 나라.

캐러밴은 바로 이런 배경 아래에서 출발했고, 바로 그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길을 나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떠밀려 진 것이고, 그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난민(難民)?

난민이란 무엇인가?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은 난민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를 의미한다.

난민은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난민에 대한 국제적 보호란 신체적 안전 이상의 의미를 포함한다. 난민에게는 모든 개인적 기본권을 비롯한 합법적인 외국인 체류자에게 주어지는 것과 똑같은 권리와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난민도 언론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및 고통과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한 시민권을 부여받으며 일반인과 동등하게 사회·경제적인 권리 및 의료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난민의 범위를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을 따라 엄격하게 해석하게 되면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인정받지 못하는 자는 협약에 의한 보호 바깥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기후 난민’, 또는 ‘경제 난민’은 난민으로서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또한 앞에서 본 ‘캐러밴’의 경우도 엄밀한 의미에서의 난민지위를 인정받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원인으로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리게 되어 생존의 기회를 찾아 이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 그 이주의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난민’보다 못한 보호나, 아예 보호에서 배제되는 것이 정당한 걸까?

기후변화로 살던 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사람들과, 잔인한 폭력에 노출되어 일상적인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가다 삶을 찾아 탈출한 사람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없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존의 기회를 찾아 국경을 넘는 사람들… 이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인권의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이고, 인류사회는 이들의 인권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와 보호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주를 택하지 않았으면 서서히 또는 즉각적인 죽음을 맞거나, 인간 이하의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말이다.

이주노동자?

“그저 더 나은 일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다. 빈곤과 불안 때문에 어떤 일이든 마다치 않도록 내몰리는 것이다.” – Facts on Migrant Labor, ILO(2004년 3월)

보편적 인권의 박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주를 결심한 사람들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 ‘난민’ 보다는 ‘이주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캐러밴에 참가한 사람들도 미국으로의 망명신청자이면서 동시에, 미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시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정착해서 살기를 원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The 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of the Rights of All Migrant Workers and Members of their Families)’은 이주노동자를 “국적국이 아닌 나라에서 유급활동에 종사할 예정이거나, 이제 종사하고 있거나, 또는 종사해온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약 9천만 명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 밖에서 이주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여성은 이주노동자 중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서비스 산업과 저 숙련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이주노동을 결심하게 하는 이유는 다양하며 대개 복합적이다. 가난과 불안정한 삶, 국가 간 및 국가 내부의 커다란 불평등은 많은 사람이 이주라는 ‘위험한 여정’을 떠나도록 결심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국경을 초월한 자본 이동이 증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은 이들이 이전보다 쉽게 출신국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규제는 증가해왔고, 많은 이주노동자가 목적국에 입국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대로 된 일자리와 안정된 체류자격을 가지고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는 극소수이며, 대개 비공식 경제 부분에 고용되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고통 받고 있다. 인권과 노동권은 거의 혹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등록 상태(한 국가에 입국 또는 체류할 수 있는 법적 서류가 없는 사람들)에 있을 때 인권침해의 위험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해마다 수천 명이 다른 국가로의 입국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고통스러운 여정을 견디고 새로운 나라에 도착한 사람들 중 다수는 알선업체와 비양심적인 공무원들에게 폭력과 착취를 당한다. 합법적 체류자격이 없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교육, 의료 주거의 권리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강제노동과 인신매매의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이들이야말로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신자유주의-세계화의 직접적 피해자이다. 자본의 세계화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져왔고, 초과이윤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자본은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부의 이동과 편중을 가져왔다.

자본은 아무런 제약 없이 수익이 나지 않는 곳에서 수익이 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어떤 곳은 투자(달리 말해 착취)에서도 배제되는 ‘버려진 땅’이 되기도 했다. 그 결과 그 버려진 땅, 버려진 나라의 시스템은 총체적으로 붕괴되고 내전, 기아, 범죄, 가난, 폭력의 지옥도가 눈앞에서 펼쳐지게 된다. 바로 그런 곳이 시리아, 예멘, 소말리아, 온두라스 같은 나라들이다. 난민과 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은 이런 ‘배제된 땅’, ‘버려진 땅’에서 발생하고 있다.

배제의 정치: 극우 포퓰리즘의 세계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반해, 노동의 이동은 철저히 선별되고 통제되었으며, 많은 경우 그 이동이 배제되어 왔다. 그러다가 유럽 등 선진국들의 노동력의 생산성이 정체되고, 노령화 등 인구학적 위기가 닥치자 이주노동자에 대한 수용이 점차 보편적이 현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미 우리나라도 이 과정에 들어서고 있다.

선진 산업국가에서의 이주노동자 수용과정에서 이질적인 문화, 종교, 언어를 가진 새로운 집단 구성원들이 사회 공동체에 섞여 들게 되면서, 정주민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이 흔들리거나 공격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특히, 무슬림들처럼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강하게 지키며, 이주한 국가에서 통용되는 기준과 충돌하는 가치관 및 문화를 고수하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되기도 했다.(ex 프랑스에서 무슬림 여성의 부르카 착용문제)

80년대 이후 꾸준히 이어진 신자유주의 하의 노동유연화로 고용불안이 일상화되고, 여기에 2008-9년 세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게 되자, 이주노동자가 내 일자리를 뺏는다는 불안과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기 시작했다. 종교와 문화적 차이에 대한 몰이해는 이 불안과 공포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단지 이주민뿐만 아니라 사회의 안정성을 해친다고 간주되는 모든 소수자(여성, 동성애자 등)를 배제하고, 허구적 민족공동체의 동질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대중적 운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 반이주민-극우 포퓰리즘의 전 지구적 확산과 성장이었다.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 브렉시트,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의 극우정당 약진 등이 그 현상이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 세계인류는, 바로 눈앞에서 ‘배제의 정치’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공격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르펜의 ‘국민전선’이. 독일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이탈리아에서 ‘동맹’이, 헝가리에서 오르반의 ‘피데스’가, 미국에서 트럼프가, 그리고 한국에서는…

하나의 답: ‘국경의 민주화’

‘국경의 민주화’ 또는 ‘국경이라는 제도의 민주화’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저서 『우리, 유럽의 시민들?』에서 나온 개념이다. 여기서 이 책의 내용을 모두 다룰 수는 없으므로 ‘국경의 민주화’에 한정해서 이야기 해보자.

발리바르는 국경을 ‘민주주의의 반민주적 조건’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우선 국경이 국민국가가 성립하고 존속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국경의 설정을 통해 국민적 동일성이 물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경은 자신과 타자, 국민과 비국민을 구별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이며, 따라서 국민적 경계 바깥으로 외국인들을 배척하고 더 나아가 국민 성원들 중 일부를 외국인들로 표상하여 억압하고 배제하기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본격화된 국민국가의 위기는 국경의 약화를 낳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상상적으로 강화하기도 한다. 초국적 자본의 힘에 의해 국민국가의 경제 및 사회 질서가 좌우되고 미국을 비롯한 초강대국의 군사적ㆍ정치적 힘에 약소 국민국가들의 흥망이 달려 있는 상황에서 인민 대중은 심각한 정체성 위협을 느끼며, 이러한 공포 내지 불안을 상상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찾는다. 이 때문에 극우 정당들이 조장하는 극단적 민족주의가 쉽게 먹혀들게 되며, 특히 사회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개인들 및 집단들에게 더욱 더 쉽게 수용된다. 전반적인 포퓰리즘의 확산 속에서 이러한 대중적인 민족주의 및 인종주의는 국가 정책이 점점 더 제도적 인종주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이것은 다시 국민과 외국인의 차별 및 배제 경향을 강화하게 되며, 유럽적인 수준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지구 전체의 수준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의 경계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경향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발리바르의 답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하나는 장기적인 제도적 창조의 과제로, 인민과 주권, 시민권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고대 도시국가에서 제국으로, 또한 제국에서 국민국가로 이행하는 과정과 비견될 만한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갈등적인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발리바르가 실마리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것은 소속의 시민권을 거주의 시민권 내지 “이산적 시민권”(diasporic citizenship)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전자가 혈통이나 언어, 문화, 국적과 같은 공통적인 기원과 소속을 중심으로 시민권을 사고하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출신의 차별 없이 외국인들에게도 정치체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2) 다른 하나의 대응 방안은 ‘국경의 민주화’에서 찾을 수 있다. 발리바르는 특히, 국경의 강화 경향에 맞서기 위한 정치의 방향을 여기에서 찾고 있다. 이것은 국경의 무조건적인 철폐라는 무정부주의적 주장(이것의 다른 표현은 세계시민주의 내지, 이른바 ‘유목주의’다)과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하는 테제다. 국경의 무조건적인 철폐는 오히려 경제적 세력들의 야만적인 경쟁에 좌우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러한 섣부른 해법 대신 발리바르는 국경에 대한 표상을 탈신성화하고 국가와 행정 기관이 개인들에 대하여 국경을 활용하는 방식을 쌍무적인 통제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국경의 민주화를 가능한 현실적인 해법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물론 답은 하나가 아닐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이 질문을 ‘우회’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 안에서도 난민 혐오와, 이민자 배제, 소수자 배제가 확산 심화되고 있다. 이것이 정치화 하는 순간, 좌파는 어떤 답을 내리고 어떤 실천을 보여줄 수 있는가가 당면한 문제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우선 그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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