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방네-한일노동자 교류

동네방네-한일노동자 교류

김영호 (공공운수노조 버스지부 신성여객 지회장)

전북과 일본 오사카, 고베 지역 노동자 교류가 1989년부터 이어져와 올해로 24번째 방문단이 일본을 방문했다. 9월 2일~5일까지 방문단 대표로 한일노동자 교류에 참가한 동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공공운수노조 버스지부 신성여객 지회장 김영호입니다.

노동조합 지회장을 맡고 계신데요. 노동조합에서 노동운동을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2010년도 버스가 총파업 들어가기 한 두 달 전에 그러니까 2010년 10월 1일부로 버스, 민주노총 인준을 받아서 그때부터 정식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햇수로 4년 정도 지금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조에 가입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한국노총 시절에는 회사한테 비벼대야 하고 노조 탄압을 받아도 지부장이라는 사람이 회사와 똑같이 어울려가면서 노조를 탄압해온 그런 것들이.. 그리고 사무실 직원들이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자기 삼촌뻘 되는 사람들한테 막말하고 이런 모든 것들 그리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갈취해가고 뻔뻔하게 그것을 한국노총 노동조합 우두머리들하고 그것을 타협을 보는 상황들이 싫어서 민주노총 가입하게 된 겁니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요?

저희 총파업 1차 때 2월 11일 날 행정대집행이 있었습니다. 우리 천막을 침탈하고 또 사내 차량을 침탈하기 위해 행정대집행이 있었는데 우리 조합원들은 70-80명 임에도 불구하고 경찰병력은 500여명 정도가 소집해서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치하다가 결국 저녁에는 다 털렸지만 그 대치하는 과정에서 우리 조합원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그 모습들이 제일 기억에 남고요. 또 한 가지 말을 한다면 연대를 해서 춘천에 가서 진흥고속 연대를 갔었는데 전북버스파업이 알려지고 그래서 연대를 했는데 그 곳에서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데 그쪽에서는 그런 것들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 거리행진이나 집회가.. 우리 전북버스동지들이 가서 거리행진을 하고 그러니까 춘천시내가 비상사태가 걸려가지고.. 경찰이 몇 명 안와서 싸이카 타고 폼을 잡다가 쌈이 나니까 경찰들도 오고 의경들도 오고.. 난리가 뒤집어진 것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 우리 전북버스 파업이 지난 3년 동안 얼마나 강하게 싸움을 했나… 그리고 연대를 다니면서 그런 것들을 일궈냈다 생각이 듭니다.

짧지 않은 4년의 노동운동 기간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투쟁을 하다보면 힘들어도 같이 싸우자 끝까지 버텨내자 우리 구호에서도 항상 있듯이 그렇게 애원하고 했었는데 투쟁 기간에 너무 힘들어서 빠져나가는 조합원들을 봤었을 때 허탈함이 있었구요. 그 사람들이 가서 그곳에 가서 이렇게 정당하게 싸우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 몇몇이 가서 민주노총은 깡패집단이고.. 뭐 이런 말들을 하고 다닐 때에 과연 저 사람이 의식을 갖고 그동안 있었는가 하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힘들고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힘든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역시 동지를 믿고 나를 믿고 옆에 있는 동지들. 그중에서 진짜 가정형편도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모습들을 볼 때에 더 싸우지 우리는 버틸 수 있다 이런 말들을 했을 때에 참 너무나 제 가슴을 울렸구요. 더군다나 조합원 중에는 5명의 아이가 있는 조합원이 있었어요. 포기하지 않고 총파업 1차 때에 갓난아이를 낳는, 5째가 됐는데도, 우유값이 없어서 그렇게 힘들어하는데도 이탈을 않고 끝까지 버텨준 그런 힘이 있어서, 우리 조합원들이 임금도 없지만은 돈 만원씩 걷어서 생활자금을 대주고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고 힘을 내서 싸우는 것 같습니다.

9월 초 일본을 방문 하셨는데.. 방문 기간 동안 가장기억에 남는 사업장이 있다면요?

오사카 전 항만 지부인데요. 거기는 최초로 나카무라 선생님이 노조 설립을 해서 지금까지 오고 있는데.. 오사카 지부 조합원이 한 3000명이 되는데 그 위원장이라는 분이 우리 간담회를 했을 때 너무나 소탈하고 겸손하고 뭐 권위의식 이런 것도 없고 대화도 농담도 잘하시고 보는 이미지도 굉장히 옆집 아저씨 같은 스타일?(웃음) 그래서 간담회를 하면서도 너무나 부담없이 했다. 똑같이 나와서 박스 안에서 담배를 같이 나와서 피면서도 농담도 잘 하시고 그런 분위기.. 지도자가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조합 간부나 조합원들이 그렇게 따르지 않을까.. 그런 것들이 인상이 깊었습니다.

방문 중에 집회는 참가하셨나요?

한군데 있었습니다. 고베 운송 회사인데, 전 사장이 일본 사장이었고 인수를 받은 사람이 한국 여자인데.. 노조를 말살시키기 위해서 회사 명칭을 바꿔서 해고자를 낳게 하고.. 탄압을 하고 있는 회사인데요. 마침 그날 거기서 집회를 하고 있어서 거기 가서 발언도 하고 구호도 외쳐주고 투쟁가도 불러주고 했습니다. 일본 동지들이 우리 한국 동지들이 투쟁하고 하는 모습들이 굉장히 좋다고 해요. 투쟁가와 구호외치는 모습들이 굉장히 인상 깊게 생각하고 그날도 또 그렇게 해주니까 너무 힘받았다하고.. 돌아온 후에 소식을 들어보니까 집회 같은게 많이 있었대요. 그런데 동원도 많이 되고 조직이 많이 되었다고 고맙다고.. 그러더라구요.

다음 일본 방문단에게 미리 당부하고 싶은 말은요?

작년에 가서는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 이렇게 말을 했던 적이 있었나 봐요. 일본 동지들은 독도문제나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정치인들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똑같이 싸우는 우리와 똑 같은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겸손한 마음에 상처 받지 않도록 이런 말들을 자제해주시고요. 그 사람들이 친절하고 베풀고 이런 것들에 우리가 먼저 선수쳐 같이 요령껏 나누고 베풀어 줄 수 있는 꼭 대접만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닌.. 우리도 같이 해서 똑같은 상황이다. 우리도 대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번 일본 방문단 100점 만점에 점수를 매긴다면요?

95점이요. 왜냐면 직접 제가 단장으로 일본을 갔는데 나카무라 선생님이 직접 얘기하시더라구요. 이번 방일단 단장 중에서도 제일로 발표도 잘하고(웃음) 너무나 리더력도 있고 단원들도 단합이 잘 하고 정말 좋았다. 그렇게 얘기 하시더라구요~

지역에서 연대하는 동지들이 많은데 연대하는 동지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사실 그래요. 버스가 장기간 동안 투쟁하다보니까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어요. 신생조직들이고 또 집단적으로 전북에서 보기 힘든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연대 동지들이 연대하는 것은 고맙습니다. 그런데 단사마다 주체를 무력화시키는 것보다는 주체가 올바로 설 수 있도록 연대는 연대로써 해주는게 고맙지 않냐.. 이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요?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들을 다니면서 그 사람들에게 빛이 될 수 있는 힘을 주고 또한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보다 우리가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듯이 밑에서 위를 쳐다볼 수 있는 그러한 우리 노동연대가 되었으면 하구요. 앞으로 지금 버스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데 그것도 잘해서 운행하는데 힘들지 않게끔 그것도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동지들과 함께 외치고 싶은 구호는요?

동지를 믿고 나를 믿고 끝까지 투쟁하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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