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방네-전북평등지부 전북도청미화 조합원 소순애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전북평등지부 전북도청미화 조합원 소순애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전북도청 미화 소순애 라고 합니다.

조합원 활동하신지 얼마나 되셨죠?

햇수로 8년째입니다.

조합원 활동과 노동운동을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되었어요?

신도청으로 옮기면서 사장이 바뀌면서 너무 용역사장이 우리를 대하는 게 너무 함부로 하고 폭언도 하고 그게 제일 싫어서 그래서 노동조합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8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투쟁은 어떤 투쟁이에요?

우리 파업 투쟁할 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나지요. (몇 년도 이지요?) 우리가 들어온 지가 6년… 그러니까 6년 전이지.. 노동조합 결성하면서 바로 막 1년 만료로 짤렸으니까.. 돌이켜보면 우리가 그래도 파업할 때는 집회 장소도 잡기도 쉬었고, 각 처에서 연대도 엄청 성의껏 와주셨는데.. 지금은 엄청 미약해진 것 같아…

파업 당시 몇 명이서 파업을 하셨어요?

총 14명 중에서 남자 분 한분만 빼고 계약만료가 되었으니까 13명이지.. 말하자면

파업은 얼마나 하신 거예요?

9개월 동안 했지요.

9개월 파업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우리가 집회를 한다고 하면 전국에서 와 주었기 때문에, 또 우리 역시도 파업기간에 어디 집회한다고 하면 전국을 안 가 본 데가 없이 연대를 해줬어요. 그런데 이제 노동자들에게 집회 투쟁을 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연대가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때만 해도 정말 행복하게 투쟁을 했었던 것 같아요.

매일이 행복하지는 않으셨을 텐데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으라면 어떤 일이 떠오르세요?

힘들었을 때는 이제 사람들이 모두 지쳐서 내가 대표로 있으면서 조합원들이 지쳐서 불평, 불만 해쌌고.. 그리고 성의 없이 이제 안 나오는 사람도 있게 되고 시일이 가다보니까.. 그렇게 될 때 정말 안타깝고 정말 우리가 어떻게든 해서 복직을 해서 이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데 이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아무튼 그럴때가 제일로 힘들었지요.

힘든 일들을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지도부들이 많이 애쓰고 또 우리가 다시 힘을 합쳐서 꼭 승리해야 된다는 그런 각오아래 서로 다시 머리 맞대서 상의도 하고… 또 힘도 실어주고..

그럼 가장 좋았던 때는요?

복직했을 때가 좋았죠.(웃음) 그런데 오전에까지도 코도 빠뜨리고 힘도 빠지고 9개월 동안 싸우고 있으니까 넋이 나가고 얼마나 힘이 없고 정말 기약 없는 기다림이잖아요. 그런데 몇 시간 차이로 해결됐다고 복직이라고 할 때 그때는 온 세상을 다 얻는 기분이죠. 여기가 대단한 돈벌이가 되고 대단한 일이라고 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뭔가 해서 그 어려운 걸 우리가 승리했다는 그 기쁨.. (박수!!)

집에서의 반대는 어떻게 극복 하셨나요?

아저씨가 안계시니까.. 아저씨는 부담은 없지요. 그런데 아들이 노동조합 이라는 것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안가지고 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그랬고.. 나 역시도 우리가 꼭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했지.. 처음에는 노동조합에서 무엇을 하는 것인지 어떻게 이끌어 가는 것인지 전혀 알고 덤비지는 않았지요. 전혀 모른 상태에서 맨 머리로 헤딩을 한거지…

그래도 아들의 반대를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는 건데 엄마 인생을 찾기 위해서는 엄마 의지도 있어야 될 거 아니냐 너희들이 반대한다고 여기서 그만두면 엄마는 이대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건 아니다. 지금은 촛불 집회 같은데 간다면 엄마 조심해서 다녀와요.. 이런 식으로 나오지..

마지막으로 전북노동연대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제가 감히 어떻게 그분들한테 뭐… 광주역에서 농민 회장님.. 그런 분들 말씀을 들어 보면 참.. 대단하신 분들도 많아요. 우리는 그에 미치지는 못할망정 묵묵히 그 분들 조금 이렇게 북돋아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끝으로 함께 외치고 싶은 구호는요?

전 조합원 힘을 모아 노동기본권 지켜내자!

Post Author: admin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